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천체물리학자 제러마이아 오스트리커(Jeremiah Ostriker)는 그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진실을 말해준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우주, 특히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2025년 4월,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눈부신 지적 호기심과 집요한 과학적 탐구로 우주의 어두운 면을 밝혀낸 선구자였습니다. 오늘은 오스트리커의 업적과 그의 삶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에 대해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우주의 어두운 진실, 암흑물질 이론의 선구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오늘날 천문학과 우주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별로 이루어진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러마이아 오스트리커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동료 제임스 피블스와 함께 디스크 형태의 은하가 회전 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진다는 사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밝혀냈습니다. 이를 통해 은하가 붕괴하지 않고 유지되기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바로 암흑물질입니다.
1974년, 오스트리커와 동료 연구자들은 “암흑물질이 일반 물질보다 10배 이상 많을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상당한 반발과 회의에 부딪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주장은 정설로 자리잡았습니다. 오스트리커는 암흑물질을 단순한 가설에서 현대 우주론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린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단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관측 데이터를 통해 정교하게 증명해나갔습니다. 암흑물질이라는 단어가 지금은 과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당연한 개념이 된 것은, 그의 집요하고 철저한 탐구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암흑에너지와 우주 팽창 – 우주의 구조를 재설계하다
오스트리커의 업적은 단지 암흑물질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주의 가속 팽창 현상에 주목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금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를 불러왔습니다. 이 개념은 한때 아인슈타인이 “가장 큰 실수”라며 철회했던 이론이지만, 오스트리커는 동료 폴 스타인하트와 함께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우주상수는 우리가 현재 ‘암흑에너지’라고 부르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두 개의 독립된 천문학 연구팀이 실제로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음을 관측을 통해 밝혀냈고, 이는 곧 암흑에너지 존재의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커는 이에 대해 놀라움과 함께 과학이 얼마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논리를 바탕으로 구성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론이 명확하고 구체적일수록, 틀릴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러한 겸손하고도 명쾌한 태도로 평생을 연구에 임했습니다.
암흑에너지 이론은 단지 천문학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이해를 재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설명함으로써, 오스트리커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실의 핵심일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연구는 우주를 설명하는 표준모형(ΛCDM 모델)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이후 수많은 천문학자들에게 연구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별보다 빛났던 한 과학자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
제러마이아 오스트리커는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따뜻하고도 유머러스한 인간미로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됩니다. 동료 학자들은 그를 “빠른 재치와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라고 회상하며, 어느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과학을 사랑했던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는 하버드에서 화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우주적인 시각”에 매료되어 물리학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후 평생을 천체물리학에 바쳤습니다. 그의 아내 알리시아 오스트리커는 저명한 시인이자 문학 교수였고, 자녀 중 한 명은 프린스턴 대학교의 천체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우주’를 가슴에 품은 가족이라 할 수 있죠.
오스트리커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40년 넘게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며, 천문학과 우주론 분야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특히 슬론 디지털 전천탐사(SDSS)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천문학자들이 수억 개의 별과 은하를 디지털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과학 공동체의 협력을 이끄는 리더였습니다. 또한 프린스턴 대학에서 재정보조 정책을 개혁해, 더 많은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도 그의 업적으로 기록됩니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건강이 악화된 마지막 순간까지 이메일로 동료들과 연구 성과를 주고받으며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길거리에서 기자를 만나면 최신의 암흑물질 이론을 들려주곤 했고, 연구실 동료들과의 피자 점심은 그의 일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결국 별을 찾았다”는 그의 말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 탐구와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발견할 수 있다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제러마이아 오스트리커는 단지 천체물리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지평을 넓힌 철학자이자 선지자였습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은 오늘날 과학계의 중심 주제가 되었고, 그는 그 변곡점의 가장 앞에서 방향을 제시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별들 사이로 떠났지만, 그의 연구와 정신은 여전히 우리 우주를 비추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커가 남긴 지적 유산은 앞으로 수십 년, 아니 수세기 동안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진실을 향한 끈질긴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