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을 내 방식대로 입는다면?”
이 질문에서 시작된 로렌 산체스의 도전은, 단순한 패션 실험이 아닌 여성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각인시키는 여정이었다. 2024년, 블루 오리진의 첫 여성 전용 우주 비행에 나서는 그녀는 단순한 탑승자가 아니다. 그녀는 그 여정을 통해 “여성도 우주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온 우주복이 그녀와 디자이너 듀오 ‘몬세’를 만나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우주복 디자인, 이제는 ‘여성의 우주복’이란 말이 어울릴 때
우주복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덩치 크고 기능성 중심의 복장을 떠올린다. 물론 기능은 중요하다. 그러나 로렌 산체스는 다른 생각을 했다. “왜 여성은 늘 남성의 우주복을 조정해 입어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녀는 단순히 여성 사이즈의 우주복을 원한 것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우주복’, 다시 말해 기능성과 스타일을 모두 담은 새로운 디자인을 원했다.
로렌 산체스는 블루 오리진의 첫 여성 전용 우주 비행을 위해 직접 움직였다. 그녀는 오스카 드 라 렌타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몬세’ 브랜드의 설립자인 페르난도 가르시아, 로라 킴 듀오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이들은 “남성용 우주복이 아닌, 처음부터 여성의 몸에 맞춰진 새로운 형태의 우주복”이라는 말에 곧바로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접근 방식은 단순히 실루엣만 다듬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의 몸에 맞는 구조, 움직임의 자유로움, 그리고 우주에서도 드러나는 ‘나답게 입는 스타일’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특히 2019년 NASA가 여성 우주인 두 명의 우주 유영을 준비했지만, 두 명 모두에게 맞는 사이즈의 우주복이 없어 계획이 무산됐던 사례는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젠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개성을 반영한 우주복도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스타일과 기능을 동시에: ‘우주복’이라는 단어가 다시 쓰이기 시작하다
산체스와 몬세 팀이 만든 새로운 우주복은 기존 우주복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이 우주복은 기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완전히 새롭다. 겉보기엔 스타트렉 유니폼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무대의상을 믹스한 듯한 이 디자인은 단순한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는다. 내부에는 압박감을 조절할 수 있는 압축층이 들어 있고, 움직임을 고려해 스트레칭 가능한 네오프렌 소재를 사용했다.
우주복임에도 불구하고 벨트와 앞면 듀얼 지퍼, 종아리 부분의 지퍼 디테일까지 갖춘 이 수트는 마치 하이엔드 스키복을 보는 듯한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활동성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된 이 우주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진화된 아이덴티티다. 실제로 승무원 전원은 3D 바디 스캔을 통해 각자의 신체에 정확히 맞춰 제작되었다고 하니, 이는 단순한 ‘예쁜 옷’의 차원을 넘어선 기술과 패션의 융합이다.
특히 측면의 그라데이션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몸의 실루엣을 날씬하게 보이게 하며, 실용성보다 과감히 ‘개성’을 택한 소매 주머니만 남기고 하의 포켓은 생략하는 등, 기존 우주복 디자인에서 볼 수 없는 미적 판단이 곳곳에 반영됐다. 실제로 기자 게일 킹은 이를 착용하고 “전문적이면서도 여성스럽다”고 극찬했으며, 우주 활동가 아만다 응우옌은 “이건 혁명”이라 표현했다. 그녀는 “의상은 정체성과 대표성의 문제다. 여성을 여성답게 보이게 하는 우주복은 우리가 우주에 속한다는 선언”이라 말했다.
우주복은 선택의 문제다: 누구나 ‘자기답게’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
로렌 산체스는 단지 본인의 패션 취향을 우주에 반영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 진짜 핵심은 바로 ‘선택의 자유’다. “글램하게 가고 싶다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누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 말은 어쩌면 우주 여행의 새로운 철학이자, 블루 오리진이 보여주는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주복에 패션 디자이너가 개입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영화 의상 디자이너 호세 페르난데스와 함께 수트를 개발했고, 프라다는 Axiom Space와 함께 2026년 아르테미스 III 미션에 착용될 달 탐사용 수트를 제작 중이다. 그러나 이번 몬세-블루 오리진의 협업은 ‘일반인이 착용하는 우주복’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가르시아는 “이 옷을 보고 사람들이 ‘헬스장에 갈 때 입고 싶다’고 말하면 성공”이라고 했고, 실제로 ‘마스 오피스를 차릴까’라며 농담 섞인 야심을 내비쳤다.
결국 이 우주복은 한 가지를 말한다.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든, 어떤 취향이든, 우주는 당신을 위한 곳”이라는 것. 우주복은 더 이상 일률적인 기능복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과 감각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의 도구로 확장되고 있다. 로렌 산체스와 그녀의 동료들이 보여준 이번 여정은 그 자체로, 수십 년간 남성 중심으로 설계되어 온 우주 탐사의 무대에 여성의 이름으로 새긴 새로운 장면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의 몸과 생각, 그리고 취향을 존중한 진짜 ‘우주복’이 있다.